CHORUS

장다은은 그간 선형적 시간의 규율을 초월하는 형태와 행위의 기원에 주목해 왔다. 그의 작업에서 거시적 관점으로 과거를 반추하는 일 - 기록, 보존, 복원, 역사화 등 - 은 보다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지난 시간을 복기하는 일 - 기억이나 추억 - 과 포개어지고 연동하며, 친밀함과 낯섦을 동시에 유발해 왔다. 그에게 대상을 기억하고, 과거를 방문하는 일은 사라진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 사이의 간극을 매개하는 행위이다. 이때 그 틈에서 형상은 완결된 기념물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소멸하고 생성하는 현재의 잔상으로 남는다. 이를테면, 초창기 작가는 P라는 익명의 존재를 설정하고, 대상의 그림자를 쫓아가듯 다수의 부조로 본을 떠서 공간 안에 연쇄적으로 배열한다.1) 최초의 형체와 파생된 다음의 형상은 존재와 기록, 그리고 번역의 문법 속에서 서로 미끄러지고, 반사되고, 교차하며 흩어진 감각과 기억을 다시 일시적으로 연결한다. 한편, 《howling》(2023, 레인보우큐브, 서울)에서 장다은은 자신의 그림자를 징검다리 삼아, 몸체를 구성해 나가길 시도한다. 그는 플리니우스 『박물지』 제35권 151절 2)을 경유하여 이제는 부재한 존재를 소환한다. 마치 기억의 형태 이상으로 신체 내부에 잔존하며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흔적들을 그러안듯이 과거를 현재에 겹치는 시도는 현실 속 자신의 그림자를 따라 손을 움직이며 그림을, 조각을 만드는 식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몸동작은 그림자를 정체하지 못하게 만들며 결국엔 끊임없는 흔들림의 궤적만을 전시장에 잠시 얹혀 놓을 뿐이다. 펼쳐놓은 드로잉과 조각, 퍼포먼스는 잠시 호응하고, 또 떨어지며, 대상을 서술하기보다는 그것에 다가서기 위해 주변을 배회하는 감각의 경로를 열어놓는다. 불연속적 요소들이 관계적으로 배치되어 하나의 감각적 질서를 형성하는 구조는 성좌적 구조를 닮았다.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던 오브제들은 관객의 시선과 움직임에 따라 잠정적으로 구성되는 감각적 배열을 완성한다. 구조는 파편으로 분절되고, 부분으로부터 다시 하나의 새로운 질서가 형성된다.

  여기가 말할 수 있는 것의 시간이요. 여기가 그 고향이다.
  말하라, 그리고 고백하라,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사물들, 그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 사라져 간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몰아내고 대신 자리 차치한 것은 형상 없는 행동이기에.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에서 발췌 3)

릴케는 인간의 유한성 - 죽음, 시간, 소멸 - 을 인정하면서도 부재와 기억을 겹치며 다층의 시간을 축조한다. 그에게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말함으로써 존재를 현전하게 만드는 것, 사물을 호명함으로 세계에 머물게 한다는 것은 애도를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부재를 존재의 다른 양태로 인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공백의 시간에 저항하듯, 대상을 잠시나마 다시 곁에 붙잡아 두고자 그림자를 따라가던 그간의 작업에서도, 《CHORUS》 (2025,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서울)에서도 장다은에게 이미지는 곧 삶과 죽음을 동시에 지닌 역설이자, 그 자체로 존재의 양식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미지는 대상을 재현, 포착함으로 흐름을 정지시킨다. 이는 롤랑 바르트의 말을 빌자면 ‘그것이-존재-했음(ça-a-été)’을 뜻하며, 순간을 살려내지만 동시에 그것을 정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이미지로 각인한다는 것은 시간의 연속성을 중단시키는 행위이며, 곧 살아 있음의 운동을 정지시키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이미지는 대상을 대신하지만, 그 대상의 부재를 증명하기도 한다. 재현은 결여의 다른 말이며, 이미지적 보존은 죽음의 의례이다.

하지만 장다은은 이 이미지를 서사의 구조나 신체를 대리하는 형식에 덧대고, 전시의 시공을 생동케 하는 문법을 구사함으로 시간의 균열 속 죽음을 지연하거나, 더 나아가 새로운 삶을 부여한다. 그의 작업은 기록이나 재현의 방식에 기대어 존재의 부재를 대리하지만, 한편으로 정착된 이미지는 환기와 촉진의 요소로서 새로운 시간 축의 현실을 경험하게 한다. 예컨대 인장이나 낙관은 인물과 신체를 대체하며 상징적 권위를 더하는 이미지이다. 그것은 실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라진 대상을 대신하는 껍질이다. 부재의 양식이자, 행위의 종결이며, 존재의 흔적을 표면 위에 봉인하는 마감의 몸짓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가는 도장의 형태에서 기인한 <ㅁ> (2025), 그 실재의 잔여물을 공간의 곳곳에 배치한다. 이 사라짐의 반복은 영속의 형식으로 부재를 드러낸다. 이제 출처와 내밀한 역사를 가늠할 길 없는 이미지는 의미적 기호에 잠시 정박하려다가도 다시 이탈하여 주변의 이미지와 연계, 공간적 리듬을 생성하는 상상적 무대의 마디가 된다. 또한, 시대와 지역, 문화를 넘나들며 전승되어 온 일곱 형제의 서사는 공간의 기둥이나 현판, 혹은 막대의 양옆에 형제의 순서를 암시하는 숫자나 문자로 새겨져 서로 겹치고 기대어 선다. 그간 표면적으로는 협동과 연대를 통해 극복을 말해오던 형제들의 이야기는 사실 파편화된 주체를 다시 가족-공동체라는 전체로 수렴시키는, 개인의 다양성보다는 집단의 통일성을 추구하는 도덕적 이데올로기로 작동해 왔다. 형제라는 구성에서 각각은 서사적 목적이 분명한 기능과 장치로 분리돼 있지만 종국에 그들은 다시 하나로 수렴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때 일곱 번째 형제를 상징하는 ‘7’이라는 숫자는 이야기의 완성을 약속한다. 작가는 (2025) 에서 이 ‘7’을 지워냄으로 보기 좋게 그 완결성을 해체한다. 심지어 이제 미완에 기대어 생성의 서사로 전환된 이미지는 <빨간 선>(2025)이나 <빨간 점>(2025)과 맞물리며 다이나믹한 시선의 흐름으로 연장되고, 공간적 차원에서 보다 입체적인 경로를 가설하는 서사적 뼈대로 전환된다. 규정된 의미와 질서가 와해하는 과정에서 별처럼 흩어진 서사의 파편들은 관계적 배치에 따라 다중의 중첩된 시간성을 확보한다. 이제 장다은에 의해 시공을 점유한 형상, 하지만 기원을 상실한 이 잔여적 이미지들은 충분히 해석 가능한 기호라기보다, 부재와 미제의 감각 단위라 할 수 있다. 형상은 단일한 서사나 원본에 종속되지 않으니, 의미는 오히려 사라진 것을 뒤따르는 형태와 물질의 감각, 공간적 위치에 따르는 시선의 움직임과 몸짓 속에서 생성된다. 그리고 초점을 잃어버린 시선은 형(形)과 상(象) 사이에서 생동하는 결손된 실재를 오히려 생생하게 감지하도록 한다.

기억과 역사는 결코 과거의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지 못한다. 그것은 늘 현재의 시점에서 경합하고, 재구성되며, 그로부터 시간은 선형적 질서를 잃고 파편화된다. 작가는 이 부서진 잔해들을 다시 배열하고, 대상의 부재와 경험의 단절을 지금, 여기의 위치에서 임시로 봉합한다. 이때의 행위는 재현의 기술이라기보다, 흩어진 사건의 편린들을 현재로 호출하는 제스처이다. 이는 결코 원형의 회복이 아니라, 그 부재가 남긴 여백을 따라 새로운 감각-자각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따라서 장다은의 작업은 과거의 서사와 이미지를 여기에 복원,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파열 속에서 여전히 현재로 이어지는 관계를 구축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이로써 개별의 목소리는 모여 하나의 감응(affect) - 코러스를 이루는 시적 집합의 이미지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1. 2024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졸업 전시에 출품한 작업인 〈p의 그림자의 그림자의 그림자〉(2023)에서 작가는 여러 개의 연쇄하는 부조 작업을 “증식하는 얼굴 그림자”라 명명하고 공간에 배치하였다.

  2.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따르면 도공 부타데스(Butades)의 딸은 사랑하는 이의 얼굴 그림자를 벽에 비추고 그 윤곽을 따라 선을 그렸고, 그 아버지는 그 위에 점토를 덧발라 부조를 만들었다.

  3.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 안문영 옮김 (서울: 을유문화사, 2025), 49.

  4. <일곱 번째 아이>(2025), <일곱 명의 아이들>(2025), 그리고 (2025)위 나무 오브제들의 표면에는 세 번째 아이, 다섯 번째 아이, 그리고 그 외의 나무 도막의 바닥면에는 형제의 순서를 뜻하는 숫자가 새겨져 있다.

크레디트

참여작가 : 장다은
기획/ 글 : 김성우

퍼포머 : 장효은
도움 : 김병석

공간조성 : 무진동사
사진 : CJY ART STUDIO (조준용)

후원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Related Collaborato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