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네 가지 체액 이론을 창시한 히포크라테스는 ‘흑담즙(black bile)’의 과잉이 우울한 기분을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정신 질환으로 여겨지기도 했던 고대 시기의 우울은 중세 기독교 사회로 접어들며 나태(Acedia)라는 형태로 변형되어 죄악의 한 형태로 제시되기도 하였다. 즉, 신에게 헌신하지 않는 세속적 무관심과 절망은 나태와 연결되어 도덕적, 영적 죄악으로 여겨진 것이다. 한편, 르네상스 시기부터 우울은 단순한 병이 아닌 창조적 영감과 관련되어 천재성의 특징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본 전시는 체액의 불균형에서 신앙적 결핍-나태로, 그리고 인간의 창조적 고뇌에서 정신의학적 질병으로 이어지며 지난 세기에서 오늘날까지 다양한 형태와 해석으로 우리의 신체를 엄습해 온 ’우울‘을 담론의 범주에서 마주한다. 담론이란 특정 시대나 사회, 제도 안에서 ‘무엇이 말해질 수 있고, 또 말해져서는 안 되는가’를 규율하는 규칙들에 대한 것이며, 지식의 경계와 진리의 조건을 정립하는 관계에 대한 것이다. 이는 지식의 체계를 형성함과 동시에 그 시스템을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 힘이 행사되는 통로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개인의 신체에 부과된 사회적 규율과 규범, 억압과 통제의 메커니즘을 살피거나, 현실을 유지하기 위한 믿음의 구조를 돌아보며, 신념이 붕괴한 이후 개인적인 공허가 사회, 역사적 상실과 연동하는 궤적을 살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본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의 멜랑콜리가 기거하는 장소와 형식, 그리고 실체를 개인과 집단, 사회와 역사의 배경 위에서 탐구한다.
사진가인 김익현은 시공과 사건을 명징하게 기록하는 매체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볼 수 없거나, 보이지 않는 세계에 다가서고자 한다. 그의 사진-기록은 기록인 동시에 기록으로부터 멀어진다. 그것은 과거에 정박해 있지만, 기존의 사실로부터는 거리를 둔다. 기록의 지층을 파헤치는 일과 같다고 볼 수 있는 그의 사진은 본 전시에서 아버지를 포함한 타인의 기록과 기억을 경유하여 한국 근현대사의 거시적 흐름 속 잃어버린 개별 서사에 접속한다. 우선 흥미로운 것은 아날로그 필름 스트립에서 단일한 액자 속 사진, 그리고 다시 디지털 모니터에서 차례대로 상연되는 이미지로 이어지는 사진적 배열이다. 빛이 관통하며 드러나는 아날로그 필름에 정착된 이미지들의 연속은 우리가 미처 읽어내지 못했던 공간과 대상에 내재한 내밀한 장소와 서사로서의 시간을 기술한다. 한편, 단일 프레임 속 독립된 사진(<책 읽는 모자 조각, 카메라 뒤의 소년>(2025))을 둘러싼 여백은 모니터 프레임 바깥으로 빗겨서 구성, 조합된 인물들의 사진이나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잔해들(<있었던 없었던>(2025))과 연동하며 사변적인 서사를 생성한다. 거기에는 거대한 힘과 연루된 개인의 자리가 있다. 그렇게 이미지라는 작은 단서들이 연결되는 과정에서 직조된 서사는 실재와 허구 사이에 위치하지만, 보다 날카롭게 현실을 관통한다. 사진-이미지는 지난 서사의 부분이다. 이 부분들은 모여도 전체를 이룰 수 없다. 하지만, 이 개별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미완, 그 여백과 유실의 공간을 인식함으로 온전한 통합을 향한 욕망의 바깥, 미시와 거시, 아주 가깝고 먼 단위들의 얽힘이 만드는 세계를 마주할 수 있다. 김익현의 사진은 과거에 속해있지만, 과거를 증명하지 않으므로 조금 다른 현실에 다가서는 통로를 구축하고, 재현되어 온 미래로부터 이탈한 경로를 개설한다. 도달할 수 없는 과거와 도래하지 않는 미래-유토피아의 사이에서 현실은 분절되고, 진동하기 시작한다.
김다움에게 오늘날의 멜랑콜리는 각종 미디어 장치를 통해 상연, 주입되는 공동의 감각이다. 직접 겪지 않았음에도 미디어를 통해 전염되는 우울은 어느 순간 우리 곁에 선 실재가 된다. 영화나 음악, 실시간 뉴스와 같은 콘텐츠는 집단적 기억과 경험을 형성한다. 한편, SNS를 통해 경쟁적으로 업로드되는 자기 프로젝션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판타지로 사용자를 이끌고, 소모적인 질투와 불만을 부추긴다. 이는 ‘성과’와 ‘속도’를 강요하는 체계에서 부지불식간에 확산한다. 감정은 더 이상 사적인 영역이 아니며, 자본은 감정을 생산하고, 관리하며, 착취한다. 작가는 미디어에서 마주한 다양한 인물들의 장면을 떠올리며, 마치 스크린에 남겨진 잔상처럼 그 파편들을 캔버스 위에 옮긴다. 미디어의 문법에 끼워 맞춰진 바깥 세계를 향한 눈과 입은 개별의 형상으로 떨어져 나와 진실과는 거리를 둔 채 멜랑콜리한 환영을 생산한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이미지를 대신하는 음성으로 대체된다. 배경을 알 길 없이 구겨지고 다시 스트레칭을 반복하는 몸짓-캔버스와 이미지 없이 서사를 추동하는 사운드는 겹치고, 또 흩어지며 환각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그렇게 전이하고, 미끄러지는 시청각의 분할과 연결 속에서 우울의 정서는 눈앞의 현상이 된다.
한편, 장진승의 작업은 기술의 발전과 인간 환경 사이의 복잡한 역학 관계를 탐구하고 여기에 존재론적 질문을 덧대며 출발한다. 그는 삶과 생활의 기반을 형성하고 작동시키는 인프라스트럭처의 체계에 주목하며, 그것이 개인과 공동체의 경험에 어떠한 흔적을 남기는지를 묻는다. 특히 기술 발전에 따른 미래 시점에 기반해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서사를 직조하는 그의 작업은
마지막으로 이동혁은 신앙의 근거가 되었던 공간을 찾아다니고, 개인과 집단의 신념을 구성하는 도상, 기호, 언어, 장소를 탐구한다. 그리고 (비)가시적인 대상을 향한 믿음과 이를 둘러싼 여러 조건을 회화적 언어와 물질을 동원하여 이미지로 번역한다. 이를테면 폐허로 남겨진 종교 시설을 관조하며, 믿음으로 구축된 공동체가 와해한 후 남은 황량함을 캔버스에 옮기며, 이상적(이라고 믿었던) 시공간의 질서로부터 박리된 풍경과 대상에 이질적이고, 불안한 정서를 투사한다. 또한, 구원과 믿음을 설파하는 글-성경에서 출발한 이미지는 상징적 도상을 차용하고, 화면 위에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누락과 왜곡, 소실을 수용함으로 기존의 맥락에서 이탈한 새로운 서사적 가능성을 확보한다. 텍스트와 이미지는 밀접할수록 믿음을 강화하는 신뢰성을 획득하지만, 이동혁의 분할된 화면, 크롭된 프레임, 활자가 부재한 채 특유의 톤으로 점철된 장면은 대상과 장소를 통해 대리했던 믿음의 자리를 삭제한다. 이제 약속된 미래가 현실에 도착하지 못해 남긴 작가의 폐허적 풍경이 그러했듯, 또는 말씀을 통해 규율하던 믿음의 서사에서 이탈한 도상이 번역의 가능성에 따라 공동체가 믿어온 기존의 가치를 해체해야만 하듯, 믿음과 진리의 체계가 허물어진 틈새에서 삶의 조건을 성찰해야만 한다.
크레디트
참여작가 : 김다움, 김익현, 이동혁, 장진승
기획/ 글 : 김성우
공간조성 : 무진동사
영상 장비 및 테크니션 : 스마트 인터렉티브
사진 : CJY ART STUDIO (조준용)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5 시각예술창작산실